부모님께 어릴 때 칭찬받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심부름을 참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부모님의 심부름 지시도 많았기에 부담스런 칭찬이었지요. 옆집에는 다른 집과 다르게 쓸만한 연장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주 연장을 빌려오라곤 하셨습니다. 쇠톱, 도끼, 대패, 빠루망치(장도리) 등. 엄마는 또 쑥떡 만들었다며 먹을 것을 몇몇 집에 가져다드리라고 합니다. 그 정도 심부름은 그래도 할 만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기 싫어서 뭉그적거리다가 결국엔 혼나며 간 심부름이 있었는데, 그건 돈을 좀 빌려오라는 심부름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심부름만은 안 가고 싶었고 정말 싫었습니다.‘이번 장날에 가마니 판 돈으로 드릴테니 얼마를 빌려달라’는 내용으로 심부름을 보내는 거였습니다. 아주 가끔있는 심부름이었지만 다른 심부름에 비해 매우 부담스러웠습니다. 물론 부모님은 동네에서 신용이 있는 터라 어린 제가 가도 동네 어르신들은 돈을 척척 내주시곤 했고, 부모님은 틀림없이 정해진 날짜에 돈을 되돌려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어도 좋으니 돈 꾸러 다닐 정도는 아니었음 좋겠다고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상화된 카드보다 현금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카드 사용은 왠지 빚지는 느낌이라서요.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이 빚 없는 국가 없고, 빚 없는 회사 없으며, 빚 없는 가정 없듯이 우리 교회도 빚이 있습니다. 도시개발과 더불어 교회 본관을 올리고 교육센터를 건축했던 터에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대출받아야만 했습니다. 저의 가정도 건축헌금을 다섯 번은 작정하였고, 아직도 나누어 드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헌신으로 이자는 넉넉하게 감당하고 있지만 원금은 매년 약간씩 상환하는 정도입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몇 년 안에 부채를 상환하고는 헌당식을 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능력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담임목사인 저는 서두르지 않으렵니다. 우선 저는 경영인이 아니라 목회자라는 정체성 때문입니다. 양무리를 잘 먹이고 양육하여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 양성하는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자 합니다. 은행 덕분에 반듯하고 깨끗한 건물을 올렸으니, 그에 따른 대가(이자 및 원금 상환)도 잘 치러야 하는 게 맞지요. 원금 상환에 대한 특별한 대안도 대책도 저에게는 없습니다만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습니다. 행정(비전) 당회와 예결산위원회가 모이게 되면서 교회 재정 운영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들이 오고 가는바, 위원들께 담임목사의 견해를 말씀드렸습니다.
교회가 경제로 눈을 돌리면 교회 영적 분위기마저 경직되겠지요. 빚을 갚아야 한다면 수시로 헌금을 강조하겠고, 성도들이 소중한 영혼이 아닌 경제 도구로 보일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인 저는 어느 하루도 교회 재정을 생각지 않은 날이 없기에 매일 새벽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부채에 대한 염려가 전혀 없다면 거짓이겠으나 염려 대신 기도하며, 하나님의 더하시는 은혜를 끝까지 기대할 것입니다. 부채에 대한 최고의 대안과 대책은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교회의 건강한 성장이라고 확신하며 꿋꿋하고 의연하게 맡겨진 생명의 몫을 감당해 가겠습니다.
교회 로비에 장식된 성탄트리를 감상하며... 양현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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