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시골 마을, 어린 시절 설날은 그야말로 행복한 축제였습니다. 분주해진 어머니의 모습에서 설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식혜로부터 시작해서 집안 여기저기 평소 볼 수 없었던 먹을거리가 쌓여가는 게 그러했습니다. 설날이 오려면 아직 보름도 더 남았는데도 어머니는 바쁘셨지요. 그을린 장판의 방바닥에서 말려진 한과 역시 설날 먹거리로 최고였습니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엄마는 밤에 목욕물을 뎁혀 부엌에서 자식들을 씻기곤 했지요. 대목 장날 사다 주시는 신발이나 설빔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도꾸리(스웨터)나 빳빳한 천의 청바지는 졸업할 때까지 입으라며 큼직한 걸로 장만해 주셨습니다. 팔 기장과 바지 단은 두세 번은 접어 올라갔습니다. 그나마 괜찮게 사는 조합장님네 아들은 누런 색깔의 옆줄 얼룩무늬 두툼한 잠바를 사줬는데 털도 복슬복슬하니 따뜻해 보이고 참 멋져 보였습니다. 설 기차표 예매가 시작되면 서울역에 줄 선 사람들이 뉴스에 출연했고 고속 터미널도, 고속도로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지만 저마다 밝은 얼굴에 양손에는 정종 한 병, 부모님 내복, 동생들 종합선물세트가 들려 있었습니다.
설날 아침 떡국 먹기가 바쁘게 구멍가게 앞마당으로 동네 아이들이 모여듭니다. 은근히 설빔 자랑도 하고 보란 듯이 세뱃돈을 호주머니에 넣다 뺏다 합니다. 쓸만한 장난감도 사고 연도 날리고 구슬치기도 합니다. 오후엔 어른들 윷놀이 구경도 하며, 화투 치는 거 보다 보면 돈 딴 어른들이 주는 용돈도 얻곤 했었지요. 설날엔 소고기가 들어간 떡국, 갖가지 전, 떡, 한과, 과일, 곶감 등등. 보기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타향살이하다가 설을 맞아 고향을 찾은 어른들 중에는 간혹 색동저고리 한복을 차려입고 세배 올리려고 돌아다니던 일도 기억납니다. 어린 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였습니다. 기분 좋은 지폐부터 동전 몇 잎까지 챙겨가며 마치 일 년 용돈을 벌어보는 느낌의 세뱃돈은 비록 오늘 저녁 엄마의 수중에 들어갈지언정 마음은 유쾌함으로 차올랐습니다. 왜 엄마가 세뱃돈을 가져가셨는지, 그 세뱃돈이 대체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조금 이해가 갑니다. 결국은 자식을 위해 쓰셨겠지만 진짜 세뱃돈을 받아야 할 분은 연휴 내내 고생하시던 엄마였거든요. 이번 설에 옛날 추억도 떠올리시며 은혜와 칭찬을 담은 덕담도 나누시고, 서로의 수고를 인정하는 격려와 사랑으로 우리의 만남과 대화가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헤어샵에서 손자와 머리 손질을 하며... 양현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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