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한 중세 이탈리아의 공무원, 정치사상가, 역사가였던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남긴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간다. 들어가지 전에 흙이나 먼지로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어던지고 관복으로 갈아입는다. 이렇게 예의를 갖춘 복장으로 몸을 단장한 후 고인들이 거처하는 옛 궁전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나는 부끄러움도 없이 그분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했던 행위의 이유를 묻는다. 그러면 그분들도 인간다움을 내보이며 대답해 준다.”마키아벨리는 역사상 유명한 인물들과 대화하기 위해서(책을 쓰기 위해서) 더러워진 평상복이 아닌 왕년의 피렌체 관료였던 시정, 다른 나라 사절들과 만날 때나 입던 관복을 일부러 차려있었다는 겁니다. 그는 그 이유를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고 쓰고 있습니다.
연주회에 가보면 지휘자나 연주가는 연미복이나 롱드레스로 정장을 합니다. 일상과는 다른 복장을 한다는 것은 특별함을 전달하려는 연주가들의 열정이겠지요. 요즘은 좀 자유로운 듯합니다만 전에는 은행원들도 유니폼을 입고 근무했었습니다. 제복이란 대개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유니폼을 입은 파일럿이나 스튜어디스도, 병원 안에서 바쁘게 병실을 오가며 환자나 가족들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백의의 의사도 멋져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나면 평범해 보이기 마련이지요. 사람은 자신의 일에 자신을 가지고 행동하고, 그 일에 어울리는 차림을 하고 있을 때 실제 자기 모습보다 훨씬 멋져 보입니다. 건설 현장에서의 안전모와 작업복 차림 또한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일과 관계없는 제복으로 교복이 있습니다. 학문하는 동안에는 딴 데 신경쓰지 말고 학업에 전념하라는 의도겠지만 요즘 학생들은 교복을 개성을 침해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겉치레로 여기는 듯합니다. 저는 학창시절 교복이 참 좋았습니다. 마땅히 입을만한 사복이 없어서도 그랬지만 단정해 보이고 학생다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교 2학년 때 교복 자율화가 되었음에도 맨 나중까지 교복을 입고 등하교했던 기억이 납니다. 교복의 장점은 학창시절에만 입을 수 있다는 거지요.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시절을 얼마나 즐기느냐는 건 본인에게 달린 것이지만 교복을 이상하게 만들어 입는 것에는 꼴불견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날씨가 더워지니 편하고 시원한 복장을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예배에 참석할 땐 예의를 갖춰 입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옷차림은 자기 개성에 맞게 입는 게 아니라 자기 개성을 택하는 것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잘 차려입는다는 의미를 담은 행위가 아닐까요? 명품을 지녀서가 아니라 명품의 삶을 가꾸어가므로 명품 인생이 되고, 그렇게 인정받는 것이니 말입니다.
맥추감사절에 어울리는 감사의 표현을 고민하며... 양현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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