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백정(이청준, 문학과지성사)’은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 된 인간의 성정과 잔혹성, 그리고 야수성을 실감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됩니다.‘나는 노랑이와 복술이 놈을 구해내야 했어. 그 개백정들로부터 말이야. 노랑이와 복술이, 둘 다 우리집 개 이름이지. 한 놈은 털이 복술복술 많아서 복술이가 되었고, 다른 한 놈은 짧은 털에 검정색과 주황색이 섞이긴 했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노리끼리 해서 노랑이가 되었지 않았나?’
어느 날 노랑이와 복술이에게 슬픈 운명이 찾아듭니다. 개 공출이 시작된 겁니다. 어디에 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개를 잡아 가죽을 벗겨가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개들에게는 청년들에게 징집 영장이 내려지듯 공출 표딱지가 내려지고, 표딱지 받은 개들은 주인 허락이 없어도 도살되어 가죽이 벗져지는 일이었습니다. 개 공출 표딱지가 청년들의 징집 영장과 다른 것이 있다면 표딱지를 받고서도 요령껏 잡히지만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면사무소에선 마을에다 개 가죽 벌 수만 배당하고, 공출 표딱지는 동네 이장네 집에서 떼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이장은 사람을 보내(개백정) 공출표를 뗀 개들을 잡아들이게 한거구요. 이 개백정들은 몽둥이와 밧줄을 가지고 공출표를 뗀 개를 잡으려고 골목골목을 뒤지고 다닙니다. 과연 노랑이와 복술이는 어찌 될까요?
일제 말기에 있었던 개 가죽 공출 사건을 6·25 때로 옮겨 구성한 이 소설은, 마을에 할당된 개 가죽 공출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담당자들(개백정)의 생리나 할당 목표 이상의 개를 마구잡이로 잡아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려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인간 심리의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도 참혹한 전쟁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그들의 마음도 그와 같은 전쟁 상태에 빠져들진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전쟁 전에는 서로 위해주고 개를 아끼던 풍속의 미학은 전쟁으로 인해 처절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었음을, 그래서 진정한 인간 존재를 증명할 길이 막막하게 되었음을 작가는 날카롭게 지적하며 성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제 기억에도 시골 장날이 되면 짐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개를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개 키우는 집을 기웃거리던 개장수 아저씨들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평소 그리도 독하게 굴던 개들도 개장수 앞에만 서면 꼬리를 내리고 뒤로 숨으며, 개장수가 왔다 간 2∼3일 정도는 통 밥을 먹지 않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장수에게서 느껴지는 살기(殺氣)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들에게서 전해지는 특유의 죽음의 냄새 때문이었을까요? 아무튼 복날이 지나면 동네 개 몇 마리는 보이지 않곤 했습니다. 이런걸 생각하면 인간은 참 잔인하다 싶습니다.
부디 이 땅의 복술이와 노랑이들이 삼복 때도 두려움없이 무사하고, 인간들이 보신한다는 명분의 희생물이 아니라 사랑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초복에... 양현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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